요즘처럼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게 되는 날, 문득 영화 <목격자>가 떠올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2018년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범죄 장면을 목격한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을 본다는 것”에 대한 책임과 두려움, 그리고 현대 사회 속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날카로 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진 살인, 그 현장을 목격한 한 남자, 그리고 그가 침묵을 선택했을 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단지 스릴러적 재미를 넘어서, ‘침묵의 공범’이라는 도덕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어줍니다.
줄거리 요약 – 창문 너머의 살인, 그리고 외면
평범한 직장인 상훈(이성민)은 가족과 함께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에서 밤늦게 집에 들어와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보던 중, 정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잔혹하게 여성을 살해하던 남자와, 그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상훈. 하지만 범인은 상훈의 시선을 감지하고 서서히 눈을 마주칩니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도 엄청난 압박감을 주는 전환점이 됩니다. 이후 상훈은 경찰에 신고하려다 망설이고, 가족의 안전과 주변 이웃의 침묵, 경찰의 무기력함 속에서 그는 점점 더 ‘보았지만 말하지 않는 자’로 변합니다.
범인은 자신이 목격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상훈을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하고, 이 평범한 가장은 점차 일상과 불안을 동시에 견뎌야 하는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사회적 무관심, 개인의 두려움, 생존 본능 등을 엮어내며 관객의 심리를 조여옵니다.
침묵은 개인의 선택인가, 사회가 만든 반응인가?
주인공 상훈(이성민)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가족과 함께 아파트에 이사 온 그는 어느 날 밤, 비명소리에 이끌려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다가 아파트 정원에서 벌어지는 살인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살인을 저지른 남자가 상훈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친다는 장면입니다.
이 짧은 장면은 상훈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관객의 심장을 움켜쥡니다. 하지만 상훈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그의 선택은 비겁한가요? 이기적인가요?
영화는 그 선택이 단순한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개인의 행동을 지지해주지 않는 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상훈은 경찰을 불러도 늦게 도착할 것을 알고 있고, 이웃들 역시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며, 무엇보다 범인이 자신과 가족을 해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선택을 유보합니다. 그의 침묵은 소심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개인을 얼마나 고립시켜왔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아파트라는 공간 –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
이 영화에서 배경이 ‘아파트’라는 점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이 살아가지만 그 벽은 단단하고 높아서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웃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심지어 위협을 감지하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처럼 여겨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마을이 아닌 아파트는 물리적 밀집 속 정서적 고립의 공간입니다. 감정도, 책임도, 연대도 존재하지 않는 아파트는 범죄가 발생해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작동하는 실험실 같은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감독은 이를 매우 의도적으로 활용하며, '공동체의 해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 시스템의 침묵
영화 속 경찰은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살인이 일어났다는 신고에도 출동은 늦고, 이웃 주민들은 하나같이 “못 봤다”고 증언합니다.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열쇠는 상훈이 쥐고 있지만, 그는 계속해서 침묵하며 상황은 악화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히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시스템의 부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은 점점 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명의 선의가 오히려 더 큰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 그것이 <목격자>에서 가장 강력한 긴장감을 만드는 요소이며, 우리는 스릴러를 보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에 대한 불신의 기록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성민의 연기, 우리 모두의 얼굴
배우 이성민은 상훈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공포’를 연기합니다. 그는 강한 캐릭터도 아니고, 영웅적인 면모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그의 선택과 갈등이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살인을 보고도 말을 하지 못하는 순간, 경찰의 질문에 망설이는 눈빛,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있어도 무거운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에 눌린 한 개인의 표정처럼 보입니다.
그는 말 그대로 ‘우리’의 얼굴입니다.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무너지는 보통 사람.
이성민의 연기는 그런 평범함 속에서도 강력한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그의 침묵은 우리 모두의 침묵일 수 있습니다.
범인은 왜 두렵지 않은가?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살인범(곽시양)은 잔인하지만, 그의 존재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를 막을 아무도 없다는 현실입니다. 곽시양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범행을 반복합니다. 그는 조직도 아니고, 거대한 악도 아닙니다. 그저 틈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틈이 바로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사회의 방치 구조입니다.
감독은 이 범인을 통해, 현실 속의 악은 소리 지르지 않고 다가오며, 그 악이 자라는 조건은 사회 전체가 만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 본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사는가
<목격자>는 겉으로는 스릴러지만, 그 내면에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무관심과 시스템의 붕괴, 공동체의 부재가 숨어 있습니다. 살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가 그 장면을 봤음에도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질문으로 끝납니다.
“당신이라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오래 남습니다.
<목격자>는 공포 영화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불편한 현실 진단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