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 다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았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관람했을 때도 깊은 여운이 남았지만, 그때는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의 시선에서 영화를 따라갔습니다. 그에게 광주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다녀오면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서 영화를 다시 보니, 김만섭이 만난 광주의 시민들, 길 위에 쓰러진 이름 모를 청년들, 그리고 그날 이후 남겨진 이들의 고통이 훨씬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히 한 개인의 영웅담이 아니라, 1980년 5월 광주에서 목숨을 잃고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속에서 배경처럼 보였던 광주 시민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얼굴을 가진 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엑스트라가 아니라, 『소년이 온다』 속 동호였고, 정미였고, 형을 잃고도 살아남아야 했던 은숙이었습니다.
김만섭의 시선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광주시민이 아니기에 처음에 김만섭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그때,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 외국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 광주는 그저 빨리 갔다가 돌아와야 할 곳이었을 뿐이었죠.
가면서 그는 도로를 막고 있는 군인들을 보면서도, 처음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거리에는 계엄군이 배치되어 있고, 총을 든 군인들은 시위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김만섭은 점점 불안해지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되묻습니다.
“뭐야, 이게? 왜 이러는 거야?!”
그의 혼란스러움은 마치 우리가 처음 광주의 참상을 접했을 때의 감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처음 영화로 5·18을 접한 사람들은 김만섭처럼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난 후 다시 영화를 보니, 김만섭이 처음으로 광주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장면이 너무나도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소년이 온다』 속 동호는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그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합니다. 영화 속 김만섭 역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도 혼란스러워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 날, 광주에서는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었습니다.
영화가 담지 못한 것들 – ‘소년’들이 있던 그곳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 시민의 시선에서 그려냅니다. 특히 어린 소년 동호의 시선에서 광주의 참혹한 상황을 묘사하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 숨어 있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갑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가족을 걱정하며 끝까지 버텨냅니다. 하지만 끝내 그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다시 《택시운전사》를 보니, 영화 속 익명의 시민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으며, ‘소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김만섭이 광주를 빠져나가려다 택시 기사들과 함께 다시 돌아오는 장면에서, 그들이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에는 그저 감동적인 장면으로만 보였던 이 장면이, 이제는 광주의 ‘소년’들이 떠올라 더욱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진실을 본 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소설에서는 살아남은 이들은 이후에도 괴로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5·18이 끝난 이후에도 트라우마와 상처가 남았으며, 심지어 어떤 이는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침묵합니다.
김만섭 역시 광주에서 돌아온 후, 다시 서울에서 일상을 살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예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후, 그는 평범한 승객을 태웁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라디오에서 들리는 뉴스는 여전히 “광주는 폭동”이라고만 보도하고 있습니다. 김만섭은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진실을 본 자는 결코 이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결론 – 더 깊이 새겨진 이야기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난 후 다시 본 《택시운전사》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가 김만섭이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광주에서 목숨을 잃고 사라져간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김만섭처럼 나 역시 ‘진실을 본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책과 영화가 던진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진실을 알게 된 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영화는 끝났지만, 이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